[쉬운 法 어려운 法 39] 그때 마다 다른 ’니코틴 살인‘ 판단 기준은?

정수동 기자 | 기사입력 2023/08/05 [10:40]

[쉬운 法 어려운 法 39] 그때 마다 다른 ’니코틴 살인‘ 판단 기준은?

정수동 기자 | 입력 : 2023/08/05 [10:40]

[기자 註] 法은 우리 사회의 질서를 규율합니다. 문제는 法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복잡할수록 法에 기대는 몫은 더욱 커집니다. <법률닷컴>이 [쉬운 法 어려운 法] 시리즈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판결 가운데 우리 생활과 밀접한 사례를 골라 해설을 곁들여 알리면서 복잡한 法을 쉬운 法으로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살인 사건의 수법은 다양합니다. 그 중 한가지가 니코틴을 이용한 살인 수법입니다. 국내에서 자행된 살인 사건 가운데 니코틴 살인은 3건입니다. 그런데 법원의 판단은 이상의 사건에서 각각 달라집니다.

 

먼저 2016년 4월 경기 남양주시에서 발생한 국내 최초의 니코틴 살인사건은 부인이 남편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부인 송모 씨의 내연남이 사건 보름 전 미국 사이트를 통해 순도 99%짜리 니코틴 원액 20㎎을 주문하는 등 간접적인 정황 증거만으로 유죄가 인정된 것입니다. 

 

1심은 “정황 증거가 확실하고 범행 동기, 방법이 매우 비열하고 치밀한 전형적인 교살”이라고 판단하면서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도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피고인들의 상고를 기각해 모두 무기징역이 확정됐습니다.

 

두 번째 니코틴 살인사건은 2017년 4월경 발생했습니다. A(22) 씨는 보험금을 노리고 신혼여행지인 일본 오사카에서 주사기로 부인 B(19) 씨의 몸에 니코틴 원액을 주입해 살인했습니다. 그의 범행은 일기장 등에서도 확인 되면서 1심과 2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해 형이 확정됐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니코틴 살인 사건으로 기소된 사건에서는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파기 환송되었습니다. 앞선 두 사건과는 어떤 차이 때문이었을까요? 

 

 

대법원, 남편 니코틴 살인사건..."유죄 단정 못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노정희)는 니코틴 원액이 든 음식물을 먹여 남편을 숨지게 한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아내의 상고심에서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습니다.

 

아내 A씨는 B씨와 2010년 5월경 혼인하여 아들 1명을 출산하고 살아오던 중, 2018년경 C씨와 내연 관계를 맺었습니다. 2020년경에는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숙식을 하며 지내도록 했는가 하면 함께 외국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공소 사실에 따르면 A씨는 이런 가운데 다액의 대출금 채무, 공방 매출 감소, 각종 공과금 연체 등으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 남편이 사망할 경우 사망보험금, 피해자 소유 부동산 및 예금 등을 상속받는 한편 내연남 C씨와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여 평소 자신이 전자담배를 피우는 과정에서 소지하게 된 니코틴 원액을 이용하여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또 A씨는 2021년 5월 26일 오전 6시 40분경에서 7시 사이에 출근하려는 남편에게 미숫가루, 꿀, 우유에 불상량의 니코틴 원액을 넣어 혼합한 음료(‘미숫가루 음료’)를 주고 먹게 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속쓰림과 오심 증상만 보일 뿐 사망하지 않자 같은 날 오후 8시에서 8시 30분경 사이에 흰죽을 만든 후 그 안에 다량의 니코틴을 넣어 국그릇 반 정도의 흰죽을 먹게 했습니다. 

 

결국 남편은 같은 날 오후 10시 30분경 극심한 흉통을 호소하며 아내 A씨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에 의해 같은 날 오후 11시 26분경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은 후 2021년 5월 27일 새벽 1시반경 귀가했습니다.  

 

A씨는 이와 같이 남편을 살해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했음에도 또 다시 같은 날 새벽 1시 30분경에서 2시경 사이에 물을 마시라고 권유하면서 다량의 니코틴 원액을 탄 찬물을 건네주고 이를 마시도록 하여, 같은 날 오전 3시경 급성 니코틴 중독 등으로 사망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1심은 검찰의 공소사실 전부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습니다. 항소심은 1심과는 약간 다른 판단을 하면서도 살인 행위는 인정하면서 징역 30년의 형을 유지했습니다.

 

즉 ▲미숫가루 음료 먹게 한 점 ▲흰죽을 먹게 한 점 등에 대해서는 남편 B씨가 응급실에 이송되었을 당시 채취한 혈액은 적기에 확보되지 못하고 보관기간 경과로 폐기되었고, 미숫가루 음료나 흰죽을 섭취하고 호소한 증상들, 응급실 이송 후 상태,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 등을 종합하면, 니코틴 음용에 따른 것이 아닐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배제하기 어렵다면서 무죄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고, 니코틴이 투여된 방법은 경구 투여로 추정되는데, 니코틴을 음용한 정황은 응급실에서 귀가한 후 아내 A씨가 건네 준 찬물 한 컵을 마신 때 뿐이라는 부검의 등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고, 그 밖에 사망현장에서 남편 스스로 니코틴을 음용하였다고 볼 만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내연관계 유지나 남편의 사망으로 취득하게 되는 사망보험금 등 경제적 목적은 살해할 만한 충분한 동기가 된다는 이유 였습니다.

 

쌍방이 상소한 가운데 대법원은 검사의 상고이유에서 니코틴 원액을 넣은 미숫가루 음료와 흰죽을 섭취하게 하여 살해하려 하였다는 부분에 관하여는 항소심의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항소심의 유죄 부분에 대해서는 “제시된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유죄로 확신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으며 그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심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이는 이상 원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면서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특히 대법원은 항소심이 유죄 인정의 간접증거로 든 이○○의 감정의견과 관련 “부검 결과 심혈에서 5.21㎎/L, 말초혈액에서 2.49㎎/L의 치사 농도에 해당하는 니코틴이 검출되어 피해자가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한 것은 확실하고, 증상이 호전된 뒤 피해자의 니코틴 음용 정황은 피고인이 건네준 찬물 한 컵을 마실 때밖에 없으므로, 이때 니코틴을 음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그러나 부검결과나 위 감정의견 등은 피해자의 사인이 급성 니코틴 중독이라는 점 및 피해자가 응급진료센터를 다녀온 후 피해자에게 과량의 니코틴 경구 투여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증거방법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 ▲이로써 ‘피고인이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피해자로 하여금 음용하게 하였다‘는 공소사실이 증명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피해자에게 찬물을 준 후 밝혀지지 않은 다른 경위로 피해자가 니코틴을 음용하게 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니코틴에 노출 시 오심, 구토, 설사 등 증상이 통상 15분 이내로 발현되고, 경구 투여 시 최고 농도에 이르는 시간은 약 30~66분, 투여 후 최고 농도 시기를 지나면 빠르게 회복된다. 그런데 피해자의 체내 니코틴이 최고농도에 이르게 되는 시각에 휴대전화 로그기록 등 행적이 나타난다”고 지적했습니다.

 

계속해서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주었다는 물 컵에는 2/3 이상 물이 남아 있었다”면서 “피해자가 피고인이 준 찬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컵의 용량, 물의 양, 피고인이 넣은 니코틴 원액의 농도와 양 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은 또 “피고인이 니코틴을 이용한 살해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니코틴 원액의 일반적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니코틴의 치사량, 구할 수 있는 니코틴 원액 내지 희석액의 농도와 사망의 결과에 이를 만한 투입량, 투입 방법 등에 대한 정보와 분석이 필요하다”면서 “그런데 수사기관은 피고인의 사전 범행 준비·계획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피해자의 생체시료에서 검출된 니코틴과 피고인으로부터 압수한 니코틴 제품의 연관성이 밝혀진 바 없다는 점. 압수된 니코틴 제품 중 사용분에 포함된 니코틴 함량은 피해자의 니코틴 음용 추정량과 비교할 때 그 차이가 상당히 크다”면서 “압수된 니코틴 제품이 피해자를 살해한 범행에 사용된 제품이라거나 그 존재가 피고인의 범행 준비 정황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대법원은 범행 동기에 관련해서도 지적했습니다.

 

즉 “이 사건과 같이 계획적이고 범행 상대가 배우자 등 가족인 경우 그 범행은 단순히 인륜에 반하는 데에서 나아가 범인 자신의 생활기반인 가족관계와 혈연관계까지 파괴되므로, 가정생활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감내하고라도 살인을 감행할 만큼 강렬한 범행 유발 동기가 존재하여야 한다”면서 “내연관계 유지 및 피해자의 사망으로 인하여 취득하게 되는 경제적 목적이 계획적으로 배우자인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충분한 동기로 작용하였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있다. 내연관계 유지나 경제적 목적이 살인 동기가 되었다고 볼 정도인지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같이 지적한 후 “살인의 공소사실 중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니코틴 원액을 탄 찬물을 건네주고 이를 마시도록 하여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부분을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의 정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면서 항소심을 파기 환송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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