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法 어려운 法 33] 공정거래법 ‘특수관계인의 관여’ 의미는?

정수동 기자 | 기사입력 2023/03/19 [09:57]

[쉬운 法 어려운 法 33] 공정거래법 ‘특수관계인의 관여’ 의미는?

정수동 기자 | 입력 : 2023/03/19 [09:57]

[기자 註] 法은 우리 사회의 질서를 규율합니다. 문제는 이 法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복잡할수록 法에 기대는 몫은 더욱 커집니다. <법률닷컴>이 [쉬운 法 어려운 法] 시리즈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판결 가운데 우리 생활과 밀접한 사례를 골라 해설을 곁들여 알리면서 복잡한 法을 쉬운 法으로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집단의 대주주들은 지배주주의 지위를 남용하여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로 하여금 특수관계인에게 이익을 제공하게 함으로써 주식지분에 따른 비율적 이익을 초과하는 부당한 이익을 얻고, 기업집단의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등의 행위를 계속하여,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 때문에 2013년 8월 13일 공정거래법 개정 당시 계열회사의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의 금지, 특수관계인의 지시・관여 금지 규정이 신설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4항 특수관계인의 ‘관여’의 의미는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해당할까요?

 

 

계열사 실적 높이려 김치 비싼 값에 팔았다가 과징금 20억

 

태광그룹 계열사 19곳은 휘슬링락CC(옛 티시스)로부터 2014~2016년 시중보다 비싼 가격으로 총 95억원어치의 김치를 산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와인은 이 전 회장 부인이 대표이사를 맡은 메르뱅에서 총 46억원어치를 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공정위는 2019년 6월 태광그룹이 계열사에 김치와 와인을 고가로 강매한 사실을 적발해 과징금 20억원을 부과하고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 대해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태광그룹 계열사들은 공정위의 과징금부과납부 명령과 시정명령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또 이 전 회장은 자신은 김치거래나 와인거래에 관여한바 없다면서 시정명령 취소를 구했습니다. 

 

서울고법 행정3부(부장판사 함상훈)는 지난해 2월17일 원고 회사들의 청구는 기각하고 이호진 전 회장의 청구는 인용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김치거래, 와인거래는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 제1호, 제4호 요건을 모두 충족하므로 원고 회사들에 대한 시정명령 등은 적법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원고 이호진이 이 사건 김치거래, 와인거래에 관여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우므로, 원고 이호진에 대한 시정명령은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같은 판결에 불복해 태광그룹 계열사들과 공정위가 상고했습니다. 

 

이에 따라 상고심에서는 이 사건 김치거래, 와인거래가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의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함께 이 사건 김치거래, 와인거래에 원고 이호진이 관여하였는지 여부였습니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김선수)는 이 같은 사안에서 “위 김치거래, 와인거래는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에 해당하고, 원고 이호진이 이 사건 김치거래, 와인거래에 관여하였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판단하면서 원심판결 중 원고 이호진에 대한 부분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대법원 2023. 3. 16. 선고 2022두38113 판결)

 

대법원은 이호진 전 회장 관련 부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제23조의2 제1항 규정은 특수관계인이 지배주주의 지위를 남용하여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로 하여금 특수관계인에게 이익을 제공하게 함으로써 주식지분에 따른 비율적 이익을 초과하는 부당한 이익을 얻고, 기업집단의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등 특수관계인을 중심으로 경제력 집중이 유지・심화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위 규정에서는 특수관계인이 기업집단에 대하여 가지는 영향력을 고려하여 특수관계인의 이익제공행위에 대한 ‘지시’뿐만 아니라 ‘관여’까지 금지하고 있는데, 특수관계인이 부당한 이익제공행위에 ‘관여’하였는지 여부는, 동의나 승인 없이 해당 행위를 하는 것이 법률상 또는 사실상 가능한지, 해당 행위를 할 동기가 있는지 여부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계속해서 “이 때 특수관계인은 기업집단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호진은 기업집단 태광의 의사결정 과정에 지배적 역할을 하는 자로, 구 티시스의 이익 및 수익구조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 영향력을 이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기업집단 태광에서 구 티시스가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구 티시스와 다른 계열회사의 거래는 지배구조 관련 중요사항 또는 중요 경영 사안에 해당하여 경영기획실이 이호준에게 보고할 대상이고, 특히 구 티시스는 2013년 당기순손실이 발생하였으므로, 이호준은 이 사건 김치거래 등 구 티시스의 실적개선방안에 관심이 많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호준이 평소 특수관계인 지분이 높은 회사에 대한 계열회사의 이익제공행위를 장려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면, 기업집단 태광 소속 임직원들이 이호준 일가 소유회사가 요구하는 사항을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실제로도 이호준은‘그룹 시너지’가 중요 평가항목으로 포함된 계열회사 및 경영진에 대한 평가기준을 승인함으로써, 계열회사 경영진으로 하여금 내부거래 특히 이호준 일가 지분이 높은 구 티시스 등을 지원할 동기를 부여하기도 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같이 설명한 후 “이 사건 김치거래로 인한 구 티시스에의 이익 귀속과 높은 이익률을 고려하면, 그 거래로 인하여 구 티시스의 자산증대 및 이를 통한 특수관계인의 자산 증대에 상당히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면서 “경영기획실이 이호준 모르게 이 사건 김치거래를 할 동기가 있다고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이호준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이 사건 김치거래의 경과 등을 보고하여 자신들의 성과로 인정받으려 하였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와인 거래도 김치거래와 유사한 점을 들면서 “이호준은 이 사건 와인거래에 관여하였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판단하면서 원고 이호준에 대하여서는 서울고등법원으로의 파기환송을 주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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