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法 어려운 法 18] 보이스피싱에 계좌 빌려줬는데 유·무죄 엇갈리는건

정수동 기자 | 기사입력 2022/11/21 [10:26]

[쉬운 法 어려운 法 18] 보이스피싱에 계좌 빌려줬는데 유·무죄 엇갈리는건

정수동 기자 | 입력 : 2022/11/21 [10:26]

[기자 註] 法은 우리 사회의 질서를 규율하는 장치입니다. 문제는 이 法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복잡할수록 法에 기대는 몫은 더욱 커집니다. <법률닷컴>이 [쉬운 法 어려운 法] 시리즈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판결 가운데 우리 생활과 밀접한 사례를 골라 해설을 곁들여 알리면서 복잡한 法을 쉬운 法으로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보이스피싱범죄를 다룬 프로그램 이미지 캡처   

 

성명불상자로부터 불법 환전 업무를 도와주면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계좌번호를 알려줬는데 보이스피싱 범죄에 이용당한 사람이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법률위반방조죄로 재판에 넘겨진 후 원심에서는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상고심에서는 유죄로 판단됐습니다. 유·무죄가 극명하게 엇갈린 겁니다. 

 

A씨는 2019년 1월 22일경 성명불상자로부터 불법환전 업무를 하는데 가담하라는 제안을 받고 자신 명의의 신협계좌를 알려줬습니다. 이어 이 모씨로 부터 940만 원을 송금 받은 후 이를 인출하여 수수료 15만 원을 제한 나머지 925만 원을 성명불상자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검찰은 이 같은 A씨의 행위가 “성명불상자가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인 피고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여 이를 방조하였다”면서 구 금융실명법 제6조 제1항, 제3조 제3항 위반의 방조죄로 기소했습니다. 

 

이에 대해 1심과 항소심은 “고객이 입금한 돈을 인출하여 환전소 직원에게 전달하여 주는 업무’가 구체적으로 어떤 법률에 의한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탈법행위인지 특정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피고인에게 정범인 성명불상자가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피고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한다는 점에 관한 고의가 있었음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계속해서 “검사의 주장대로 피고인이 인식한 행위가 외국환거래법위반 행위라고 하더라도 정범인 성명불상자는 외국환거래법위반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전화금융사기 범행을 하였을 뿐”이라면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에따라 상고심에서의 쟁점은 ▲피고인이 인식한 성명불상자의 타인 명의 금융거래의 목적(= 무등록 환전 영업)이 구 금융실명법 제3조 제3항(이하 ‘이 사건 규정’)의 범행 목적인 ‘그 밖의 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정범이 목적으로 삼은 행위(= 전화금융사기 편취금 은닉을 목적으로 한 타인 명의의 금융거래)와 피고인의 정범의 고의 중 정범의 목적의 내용(= 무등록 환전 영업을 목적으로 한 타인 명의의 금융거래)이 다른 경우, 방조범 성립의 요건인 ‘정범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였습니다.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노태악)는 무등록 환전영업을 하기 위하여 타인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려고 한다고 인식하였음에도 이러한 범행을 돕기 위하여 자신 명의의 금융계좌 정보를 제공하였고, 정범인 성명불상자는 이를 이용하여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을 통한 편취금을 송금받음으로써,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 실명의 금융거래를 하였으므로 방조범이 성립하고, 정범인 성명불상자의 탈법행위의 구체적 목적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범죄 성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이와 달리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대법원 2022. 10. 27. 선고 2020도12563 판결).

 

재판부는 이와 관련 “구 금융실명법에서 말하는 ‘그 밖의 탈법행위’라 함은, 단순히 우회적인 방법으로 금지규정의 제한을 피하려는 행위 전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재산의 은닉과 같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행위에 준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방조범의 정범의 고의에 대해서는 “방조범에서 정범의 고의는 정범에 의하여 실현되는 범죄의 구체적 내용을 인식할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고 미필적 인식 또는 예견으로 족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같이 정의한 후 “구 금융실명법 제6조 제1항 위반죄는 이른바 초과주관적 위법요소로서 ’탈법행위의 목적‘을 범죄성립요건으로 하는 목적범이므로, 방조범에게도 정범이 위와 같은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 실명 금융거래를 한다는 점에 관한 고의가 있어야 하나, 그 목적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인식할 것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전기통신금융사기의 범인이 사기 범행을 통한 편취금을 자신이 아닌 타인 명의 금융계좌로 송금받는 이유는 범죄수익을 은닉하고 범인의 신원을 은폐하기 위한 것으로, 타인 실명의 금융거래를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전형적인 경우이므로 이 사건 규정이 말하는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한 타인 실명 금융거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계속해서 “무등록 환전 영업을 위하여 타인의 금융계좌를 이용하여 금융거래를 하는 것은 이 사건 규정이 말하는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한 타인 실명 금융거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피고인은 정범인 성명불상자가 이 사건 규정에서 말하는 ’탈법행위‘에 해당하는 무등록 환전영업을 하기 위하여 타인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려고 한다고 인식하였음에도 이러한 범행을 돕기 위하여 자신 명의의 금융계좌 정보를 제공하였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정범인 성명불상자는 이를 이용하여 전기통신금융사기 범행을 통한 편취금을 송금받아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 실명의 금융거래를 하였다”면서 “그렇다면, 피고인에게는 구 금융실명법 위반죄의 방조범이 성립하고, 피고인이 정범인 성명불상자가 목적으로 삼은 탈법행위의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범죄 성립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하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 대해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인들이 편취금을 송금받을 계좌를 구하기 위하여 무등록 환전 영업, 도박자금 환전, 조세 포탈 등의 명목으로 수수료를 약속하면서 피고인으로부터 금융계좌 정보를 제공받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이때 피고인은 자신의 계좌로 송금된 편취금을 인출하여 수수료를 제한 나머지를 현금으로 전달하는 소위 ’인출책‘ 역할을 하게 되는데, 계좌를 제공한 경위가 위와 같은 경우 전기통신금융사기에 대한 고의까지 인정하기는 어려운 사안들이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계속해서 “금융실명법은 2014. 5. 28. 이 사건 규정을 신설하였고, 그 후 검사는 위와 같은 사안에서 피고인을 이 사건 규정 위반죄에 대한 방조로 보아 기소하기 시작하였다”면서 “법원은 대체로 이를 유죄로 판단하였으나, 이 사건과 같이 ▲피고인이 인식한 정범의 목적이 ’탈법행위‘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하고, ▲그 인식 내용과 실제 정범의 목적이 달라 피고인의 고의를 인정하기도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는 사례들이 있어 하급심의 판단이 유/무죄로 갈려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같이 말한 후 “이 사건 규정이 말하는 ’탈법행위‘의 개념을 명확히 함으로써 이 사건 규정 위반죄의 성립범위가 부당하게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는 한편, 피고인이 인식한 정범의 목적이 그와 같은 ’탈법행위‘의 범주에 해당한다면 그 구체적인 내용까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방조범의 ’정범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 판결을 통하여, 정범이 무등록 환전 영업 등 탈법행위를 목적으로 타인인 피고인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금전적인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금융계좌 정보를 알려주는 경우 정범의 실제 목적이 무등록 환전 영업이 아니라 전기통신금융사기 편취금의 은닉이었다고 하더라도 금융실명법위반죄의 방조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불법적인 금융계좌 정보 제공행위를 근절하고자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조세 포탈 목적으로 인식했던 사안으로, 같은 날 선고된 대법원 2021도1965 판결, 2021도12279 판결, 2022도2720 판결 3건 모두 원심 무죄였으나 같은 이유에서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했다. 또한 도박자금 환전 목적으로 인식했던 사안으로, 같은 날 선고된 대법원 2021도10534 판결(원심 유죄, 같은 이유에서 대법원은 상고기각)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다만, 전기통신금융사기 범인들이 피고인에게 보다 적극적인 기망행위를 하여 피고인이 인식한 정범의 목적이 ’탈법행위‘의 범주에 해당하지 않거나 피고인이 정범의 행위가 ’타인 실명 금융거래‘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경우에는 피고인의 정범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이런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수긍하였습니다. (같은 날 선고된 2020도7940 판결, 2020도12561 판결. 2건 모두 원심 무죄, 상고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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