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이교지(卑而驕之) 저자세를 취하여 교만하게 만든다

이정랑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21/11/17 [09:42]

비이교지(卑而驕之) 저자세를 취하여 교만하게 만든다

이정랑 칼럼니스트 | 입력 : 2021/11/17 [09:42]

용병은 적을 속이는 ‘궤도’다. 그런 까닭에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쓸 수 있으면서도 쓸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가까운 곳을 노리고 있으면서 먼 곳에 뜻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먼 곳을 노리면서 가까운 곳에 뜻이 있는 것처럼 꾸민다. 적에게 이익을 줄 것처럼 유인해 끌어내고, 적을 혼란시켜 놓고 공격한다. 적의 병력이 건실하면 내 쪽에서도 태세를 정돈하여 대비하고, 적이 강하면 자중하면서 정면충돌을 피한다. 적을 화나게 만들어 어지럽히고, 저자세를 취하여 교만하게 만든다. 적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으면 집적거려서 피곤하게 만들고, 적들이 서로 친밀하면 이간시킨다. (『손자병법』 「계편」 이와 관련 ‘용이시지불능’‧‘난이취지’ 참조)

 

‘저자세를 취하여 적을 교만하게 만든다.’는 뜻의 ‘비이교지’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상황이 있다. 하나는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말로 적을 대함으로써 적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계략을 써서 적에게 교만한 마음이 생기게 만드는 것이다. 그 어느 것이 되었건 목적은 적의 교만함을 조성하는 데 있다. 교만해지면 상대를 깔보게 되고, 상대를 깔보면 그 결과는 패배로 귀착된다. 『백전기법』 「교전(驕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적이 강성하여 손에 넣을 자신이 없으면 말을 공손히 하고 후한 예물 등을 보내 적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든 다음, 틈을 타서 단숨에 격파한다.

 

노자(老子)는 “적을 깔보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다. 적을 깔보면 내 보물을 잃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오자(吳子)는 심지어 “문을 나서면 모든 것을 적을 대하듯 하라”고 후세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조조(曹操)는 ‘횡삭부시(橫槊賦詩)’라는 시에서 우세한 병력을 가지고도 교만한 마음 때문에 적벽에서 참패했음을 자인했다. 부견(符堅)은 백만에 가까운 대군만을 믿고 교만하게 적을 깔보며 ‘말채찍을 던지면 강물의 흐름도 막을 수 있다’고 큰소리치다가 8만 동진 군대에 의해 낙화유수 꼴이 되어 쫓기다가 끝내는 전진의 붕괴를 재촉하고 말았다.

 

장수의 교만함은 수양이 성숙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세력이 강하면 교만해지기 쉽고, 학문이 모자란 자가 교만하게 마련이며, 병력의 강성함만 믿고 적을 깔보면 교만한 마음이 생기기 쉽고, 계속 이기면 해이해져 교만함이 더욱 커진다. 교만한 장수 밑에는 틀림없이 교만한 병사가 있다. ‘한서’ ‘위상전(魏相傳)’에 “나라 큰 것만 믿고 백성숫자 많은 것을 뽐내며 적에게 위세를 떨려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교만한 군대”라는 구절이 있다.

 

‘비이교지’는 상대의 마음을 빼앗고 상대의 계략을 어지럽히는 데 뜻을 둔다. 강하면서도 약한 척하고, 할 수 있으면서도 못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교만한 마음이 생긴 적장은 정확한 판단과 객관적인 역량 비교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능력 있는 장수는 적이 나를 깔보는 것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적이 나를 깔보도록 수를 쓴다.

 

기원전 207년, 흉노 국에서 있었던 사실이다. 태자 묵특(冒頓-몽골어)은 아버지를 죽이고 스스로 최고 권력자인 선우(單于)가 되었다. 이때 병력이 강성한 동호(東胡)의 우두머리가 사신을 보내 무리하게도 천리마를 요구했다. 묵특은 이웃 나라와 화목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신하들을 설득하여 정중하게 귀하디귀한 천리마를 동호로 보냈다.

 

동호의 우두머리는 묵특이 감히 자신을 거스르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한 술 더 떠서 이번에는 미녀를 요구했다. 묵특은 이번에도 군신들의 열화와 같은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이 아끼는 미녀를 동호로 보냈다. 동호의 우두머리는 더욱 교만해져 이번에는 흉노의 땅을 내놓으라고 했다. 묵특은 이제야말로 동호의 욕심을 제지해야 할 때라고 판단, 동호를 습격했다. 묵특을 깔보며 방비를 하지 않고 있던 동호는 묵특의 갑작스런 기습을 받고 망하고 말았다.

 

삼국시대 관우는 그 무예가 당대에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절륜했다. 그러나 그것이 교만함으로 발전했을 때 형주를 잃었고 맥성(麥城)의 실패를 맛보았다. 당초 여몽과 관우는 오랫동안 서로 대치하고 있었는데, 형주의 군기가 엄하고 강을 따라 봉화대가 잘 갖추어져 있어 여몽으로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러자 여몽은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는데, 육손이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관운장은 영웅으로 자처하며 천하무적을 뽐내고 있지만 그가 걱정하고 있는 상대는 오직 장군뿐입니다. 따라서 장군께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병을 핑계로 사직하시고 육구(陸口)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십시오, 그런 다음 후임자로 하여금 정중하고도 겸손한 자세로 관우를 칭찬하여 그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면 저쪽은 틀림없이 형주에서 군사를 철수시켜 번성으로 갈 것입니다. 만약 형주가 무방비 상태에 놓이면 소수의 병력으로 기습을 가해도 장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몽은 육손의 건의에 따라 병을 핑계로 사직서를 올렸다. 손권도 그 계책을 받아들여 여몽을 건업으로 불러 쉬게 하고, 젊고 아직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육손을 우도독으로 삼아 여몽을 대신해 육구를 지키게 했다.

 

육구에 부임한 육손은 곧 한 동의 편지와 명마‧비단‧좋은 술 등과 같은 예물을 번성에 있는 관우에게 보냈다. 관우는 이것이 계략인 줄 모르고 사신 앞에서 손권과 육손을 비꼬았다.

 

“손권이 눈이 멀었나 보구나. 이런 애송이를 장군으로 삼다니!”

 

사신은  땅에 엎드려 이렇게 아뢰었다.

 

“육 장군께서 예물과 함께 편지를 보내신 것은, 첫째는 장군을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자는 것이고, 둘째는 양쪽의 우호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쪼록 쾌히 거두어주십시오.”

 

관우가 편지를 뜯어보니 그 말투가 너무나 정중하고 공손했다. 편지를 다 읽고 난 관우는 큰 소리로 웃어젖히며 예물을 거두었다. 이후 관우는 육손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고, 형주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을 대부분 번성 쪽에 배치했다.

 

육손은 그 틈에 병사를 상인으로 변장시켜 배를 타고 가서 봉화대 아래에 몸을 숨겼다가, 밤에 봉화대를 습격하는 데 성공했다. 또 항복한 군사들로 하여 몰래 형주 성문을 열게 해서 가볍게 형주를 손에 넣었다. 옹고집으로 자신만만, 하던 관우는 오‧위군의 협공을 받고 잔병을 이끌고 맥성으로 패주했으나, 끝내는 생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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