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웅 광복회장, "모친 가짜 독립군? 음해를 넘어 조작"

은태라 기자 | 기사입력 2021/06/18 [19:24]

김원웅 광복회장, "모친 가짜 독립군? 음해를 넘어 조작"

은태라 기자 | 입력 : 2021/06/18 [19:24]
"독립후손들이 대부분 가난하고 제대로 학교를 다닌 사람들이 없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잘 먹고 잘 사는 분위기이다. 8.15 광복절 때마다 가난한 독립운동가, 부자 친일파는 반복 되지만 그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6년이 지났지만 친일 잔재는 아직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
 
2년 전 '친일청산'을 내세워 당선된 김원웅 광복회장이 공약을 실천하면서 '정치 중립성 논란'과 함께 반대가 격해지고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 (사진=은태라 기자)

김원웅 회장은 17일 <인터넷언론인연대> 취재본부와의 인터뷰에서 독립운동가들은 해방 후에도 일제시대 못지않게 탄압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그 이유는 나라를 배신하고 일본 편에 선 친일파들이 해방 후에는 미국에게 빌붙어서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1944년 중국 충칭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 만주에서 활약했던 부부 독립운동가 김근수·전월선 지사이다. 두 사람의 인연을 맺어준 인물은 백범 김구 선생이다. 
 
해방 후 부모님과 함께 고향인 대전으로 간 그는 자신의 집을 호남과 영남의 독립운동가들이 만나는 사랑방으로 기억했다.
 
당시 막걸리 심부름을 하며 들었던 많은 이야기 중 '독립운동가들이 8.15 광복절 기념식에 가기 싫어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기념식에 가면 단상 의자에 앉아 박수 받는 놈들은 독립군을 토벌했던 자들이고, 정작 독립군들은 아래에서 박수 치고 있었다. 독립후손들 만나보면 해방 이후 투옥 당하고 고문 당하고 학살 당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집안이 풍지박살났다. 윤서인 말처럼 대충 살고 무능해서가 아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가난한 독립운동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지증진을 내세울 때 독립운동가들이 꿈꾸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거에 나갔을 때부터 조중동을 비롯한 토착왜구 세력의 강력한 저항을 예상했다고 밝혔다.
 
"친일찬양 금지법 만들겠다. 뉴라이트 국정교과서, 류석춘, 이영훈 교수 등 일본 전범기업 자금 받아서 친일 미화하는 것 처벌하겠다. 나치도 그렇게 하지 않는가? 세상을 움직이는 게 돈과 권력만이 아니다. 정의도 움직인다. 정의를 상징하는 국가공동체로서 최고의 선이 독립운동 정신이다"
 
그리고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 관련 비하인드에 대해 소개했다.
 
김 회장은 "(2년전 취임 직후)8.15 행사 관련 행안부 직원들이 20여일 전부터 상의를 했다. 기념사 3분만 하라고 하니 10분 쓰겠다고 했다. 그러자 원고를 청와대와 상의해서 수정해서 주겠다고 하니 안주겠다고 그랬다. 수십년간 그랬다고 하자 대통령은 경축사고 우리는 기념사라더라. 어느 행사든 제일 높은 사람이 제일 늦게 나온다. 10시 행사면 대통령이 10시에 나온다. 난 대통령과 영부인과 같이 들어오겠다. 생존 하신 분들 네분과 같이 들어가겠다. 이게 국가정상화"라고 강조했다. 또 "프랑스 레지스탕스 행사를 보면 대통령과 총리가 뒤따라 간다. 미국, 영국, 사회주의, 자본주의 등 관계 없이 그렇게 한다. 우리만 데코레이션(장식=들러리)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제주 경축식에서 원희룡 지사가 답사를 통해 기념사를 비판한 것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작년 원고에 넣다가 뺀 것이 있다. 기념사는 혼자 하는게 아니라 초안을 만들고 검토해서 16개 시도에 보내 의견을 듣는다. 작년에 3번 보냈고 의견을 받아 34번을 수정했다. 그 전날까지 있던 것을 본부에서는 뺐는데 14일 밤 12시에 보내다 보니 그 전의 내용을 읽은 지부도 있다. 그 내용이 해방이 되니 친일파들이 미국에 빌붙어서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임시정부가 들어올려고 하니까 맥아더가 막고 해체하고 개인 자격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만주에서 독립군 토벌하는 자들을 끌어왔다. 전에 국회 외통위원장하면서 비밀자료를 보니까 당시 맥아더가 일본에 있었는데 그 때 '우리가 양성하던 친일파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보다 조선인을 더 잘 다룬다. 말단 순사만 시켜줘도 경쟁을 치열하게 하면서 동족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학살하는데 선수다. 36년 동안 훈련이 잘 됐다. 그들이 일본을 위해 충성을 다했는데 미국을 위해 충성을 안하겠는가'라고 일본에서 자문했다. 겉으로는 독립이지 실제로는 미국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승만은 자기 전용기로 들어왔다. 임시정부는 기가 세니까 백선엽, 신태영, 박정희 등 독립군 토벌 앞장 섰던 사람들을 데려왔고 미군정 하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들을 중심으로 초대 육군참모총장부터 21대까지 독립군 토벌대가 육군참모총장을 했다"고 말하고 "국방부 장관, 총리, 국회의원도 하고 끝나면 국영기업체로, 대사로 갔다. 죽으면 국립묘지에 묻힌다. 독립군들이 법통을 이은 국군이 아니다로 썼다가 너무 거칠어서 뺐다. 근데 제주도에서 읽었다. 원희룡 도지사가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내용을 빼고 안익태 이야기를 넣었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초상이 없는 지폐가 없는 나라가 한국 밖에 없다. 친일파 넣을 수가 없으니 신사임당을 한 것이다. 친일파들이 안 넣을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불거진 김임용 회원 제명 관련에 대해서는 "가난하고 힘드니까 간혹 태극기부대들이 생긴다. 그리고 사기나 폭력이 발생하면 회원 정관에 따라 징계를 한다. 김임용 씨의 경우 상벌위원회 할때 조선일보 기자를 배석시키겠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 광복회 내부 분위기는 열광적이고 어느 때보다 단결이 잘 되어있다. 취임 전에는 광복회를 몰랐지만 이제는 광복회를 안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지난 2년여 동안의 성과를 말했다.
 
김 회장은 모친의 독립운동 행적이 언니의 것이라는 의혹에 대해서도 자세히 답변했다.
 
그는 "사실 외가 쪽으로 잘 몰랐다. 어머니(전월선) 돌아가신 이후 알아보니 언니(전월순)가 한 분 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가명을 썼다. 부친도 김근수이지만 왕석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월순으로 가명으로 썼을수도 있다. 또 하나는 김희라는 이름도 있다. 백범이 그런 것처럼 가명도 여러개 있다. 모친은 만16살에 조선의용대에 가입해서 나중에 김원봉과 42년에 합치면서 광복군 1지대가 됐다. 작년에는 그것도 가짜라고 하더니 입증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이어 "우리나라와 상의 없이 만든 중국정부 자료와 일본 경시청 첩보 자료에 부모의 자료가 들어가 있다. 약산 김원봉과 함께 광복군에 투입된 불량 선인 명단 44명에 부모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지금 와서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은 월선이가 독립운동을 한 언니 이름을 사칭해서 훈장을 받았다고 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김 회장은 "당시 조선의열단 사진도 있고, 가명을 썼고, 해방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에서 나눈 이야기가 있다. 제가 광복회장이 될 때 결정적인 도움을 주신 독립후손이 있다. 제가 충칭에서 태어날 때(1944년) 9살 정도였다. 내가 너를 업어주고 우리 누나가 너를 기저귀도 채웠줬다는 이야기가 광복회에 다 퍼져있다. 그 분이 몇 달 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십 몇년 동안 교류가 없다가 최근에 이모를 만나 월순이라는 분이 계셨고 1953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이미 최 씨성을 가진 분과 결혼했고 자녀도 많았다. 언니 이름을 가명으로 쓴 것 뿐이지 동생을 사칭했다고 조작을 하니 고민이 많다"고 했다.
 
이어 "청와대 청원에 올린 것도 제가 먼저 검증해라고 요구했다. 도리어 근거가 더 많이 나왔다. 조선의용대 단체사진도 나왔다. 아니면 말고식의 음해이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연락이 계속 오는데 내가 인터뷰를 안하려고 한다. 일제 때부터 해방 이후 70여년 동안 독립운동가들을 빨깽이, 친북 좌파로 몰아갔는데 감히 광복회를 취재 하겠다고 하는가"라고 소리를 높였다.
 
법률닷컴 은태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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