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생활수급자가 국선변호인 선임을 요청하며 관련 소명자료까지 제출했는데도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재판을 진행한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한 것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지난해 7월 부산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던 중 의료진에게 욕설을 하고 응급실 벽을 주먹으로 치는 등 소란을 피운 뒤, 이를 제지하던 의료진의 팔꿈치를 잡아당겨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A씨가 과거 폭력 및 음주운전 전력이 있음에도 반복적으로 사회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저질렀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반면 항소심은 피해자와 합의가 이뤄졌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형량을 대폭 낮춰 벌금 6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이 문제 삼은 것은 형량이 아니라 재판 절차였다.
A씨는 항소심 진행 과정에서 자신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수급권자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출하며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해당 신청을 기각한 뒤 변호인 없이 재판을 진행했고, 결국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형사소송법 제33조 제2항에 따라 피고인이 빈곤 등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 법원이 국선변호인을 반드시 선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제출한 소명자료에 따르면 빈곤으로 인해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인정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공판 절차에 참여하도록 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기회를 박탈함으로써 피고인이 효과적으로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결국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 법원에 돌려보냈다.
이번 판결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피고인에 대한 국선변호인 제도가 단순한 절차가 아닌 헌법상 방어권 보장을 위한 핵심 장치라는 점을 재확인한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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