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비행시간 조작, 26년 법적 투쟁...이채문이 말하는 공익제보자의 현실

이서현 기자 | 기사입력 2026/02/02 [16:23]

비행시간 조작, 26년 법적 투쟁...이채문이 말하는 공익제보자의 현실

이서현 기자 | 입력 : 2026/02/02 [16:23]

전직 대한항공 부기장 이채문 씨가 신간을 통해 30년간의 무자격조종사 사용과 16년 법정 투쟁기를 고발했다. 그는 재벌의 횡포와 이에 무릎을 꿇은 사법부를 'K-시스템의 적나라한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공익제보자 대한민국을 고발한다』를 출간하고 통해 자신의 삶과 한국 항공 산업, 그리고 사법 시스템의 이면을 정면으로 고발했다. 

 

 

다음은 이채문 전 부기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대한항공 입사 후 어떤 일이 벌어졌나.

A. 1987. 11. 2. 대한항공에 입사할 때 인사과장이 “비행시간을 1,500시간 이상으로 만들어서 사업용 조종사 자격증을, 계기비행시간을 50시간 이상으로 만들어서 계기비행자격을 취득하라”고 지시했다. “회사에서 비행을 안 시켜주는가요?”라고 하니까, “회사에서는 개인의 부족한 시간을 채워주는 비행은 안 시켜준다. 각자가 해결하라”고 했다. “우리 더러 범법자가 되라는 것인가요?” 하니, “싫으면 나가면 된다.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리고 대한항공은 교통부의 것이고, 교통부는 대한항공 것이다. 지금까지 선배들도 다 그렇게 해왔다”고 말해 안심을 시켜서 비행시간을 조작해 제출했다. 이00 과장이 모아서 교통안전공단에 제출해 주었고, 각자가 가서 응시해 합격해 비행을 해 왔다.

 

Q. 부당해고를 주장하고 계시는데

A. 그렇다. 조양호 회장의 대학 후배들은 군에서 비행기도 아닌 헬리콥터만 291시간을 비행했고, 계기비행시간은 한 시간도 없는데도 입사 후 5~6년 만에 기장을 시켜준 반면, 나는 군에서 2,400여 시간을 비행했고 계기비행교육도 받았으며 계기비행시간이 50시간(실제 10, 후드 33, 시뮬레이터 7)으로 완벽했는데도 입사 후 11년 3개월이 돼도 기장 승진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항의하다가 부당해고를 당해 행정소송을 했지만 패소했고, 검찰에 무자격조종사 사용을 고발했는데도 기각됐다. 그래서 1인 시위로 고발하게 됐다.

 

Q. 법정 투쟁으로 이어졌는데 어떻게 진행됐는가?

A. 2002. 3. 5.부터 1인 시위로 “대한항공은 30년 동안 무자격조종사(시간 미달자, 회전익항공기 조종사, 계기비행 무자격자)를 사용해 온갖 사고를 다 내어왔다”고 하니까, 2002. 4. 8. 시위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면서 시위를 못 하게 했고, ‘만약 시위를 하면 1회당 50만 원씩 달라’고 했다. 판사는 그대로 결정을 했고, 대한항공은 그것을 근거로 집안의 모든 가재도구에 빨간 딱지를 붙였다. 그러나 그치지 않고 시위를 강행하자, 2003. 3. 27. ‘허위사실로 명예훼손했다’며 고소했다. 허위사실이라면 시위 즉시 고소해야 하는데, 시위금지 가처분으로 1년이나 지나서 고소한 것이다. 당시 MBC 등 모든 언론이 ‘이 모 씨가 1인 시위를 하는데, 이상하게도 1인 시위를 금지하는 판결이 나왔다’고 보도했지만, 무자격조종사 내용은 보도하지 않고 1인 시위 금지 사실만 보도했다.

 

Q. 경찰에서는 어떻게 이 사건을 바라봤는가?

A. 시위금지 가처분으로 모든 가재도구까지 압류했어도 시위를 그치지 않자, 서울강서경찰서에 ‘허위사실로 명예훼손했다’며 고소했다. 경찰 조사관이 수갑을 의자에 걸쳐 놓고 강압적으로 조사했지만, 모든 증거로 입증하자 잠시 나가더니 돌아와 태도가 달라졌다. 상급자에게 중간보고를 해 ‘도저히 구속할 수는 없겠다’고 했던 것으로 보였다. 조사 결과는 “대한항공은 30년 동안 무자격조종사(시간 미달자, 회전익항공기 조종사, 계기비행 무자격자)를 사용해 온갖 사고를 다 내어왔다고 한 것은 사실 적시로 판단된다”고 했는데도, 김용정 검사는 이를 뒤집어 “공연히 허위사실을 적시해 피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벌금 200만 원에 약식기소했다. 판사는 이를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Q. 대한항공이 보상을 제안했다는 주장을 하고 계시는데

A. 그렇다. 재판이 시작됐는데 상대가 대한항공이라 변호사들이 모두 맡지 않으려 했다. 간신히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이 진행되며 치부가 드러나자, 2004. 2. 5. 대한항공은 나의 동기인 박○○ 기장을 보내 “얼마를 주면 되겠는지 알아서 오라”고 했다. 그동안은 복직만 요구했지만 너무 지쳐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11년을 못하고 나왔으니 11억 원을 받아야 하지만 절반인 5억 원만 받겠다”고 하니, “그렇게 전하겠다”고 했다. 점심을 사줘서 먹고 헤어졌다. 2004. 2. 18. 심이택 사장이 오라고 해 갔더니 김○○ 인사상무와 법무팀장이 있었다. 심 사장은 “이 기장, 이제 시위와 유인물 살포를 그만하시오. 보상을 해 줄 테니, 얼마를 주면 되겠어요?”라고 했고, “5억 원만 주면 시위를 접겠다”고 하자 “그러면 김○○ 인사상무와 잘 협의해 보시오”라고 했다.

 

“무자격조종사를 사용했으면서 왜 안 했다며 고소했습니까?”라고 묻자, “미안해요. 원래 고소를 하려면 회장님 이름으로 해야 하는데, 그건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내 이름으로 했으니 미안해요. 다음에 개인 대 개인으로 술 한 잔 사겠어요”라고 했다. 김○○인사상무 사무실에서 다섯 차례 만나 절반인 2억 5천만 원으로 구두 합의했다. 합의서를 쓰자고 하자 “합의서를 쓰면 문제가 되니 현금으로 바로 주겠다”고 했고, 2004. 6. 7. 주기로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주지 않았고 이후 합의를 부인했다. 그래서 ‘합의한 합의금을 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냈더니, 합의 사실이 없다며 공갈미수·협박으로 또 고소해 기존의 2003고단5438 명예훼손 사건과 2005고단44 공갈미수·협박 사건이 병합됐다.

 

대한항공은 아주아주 파렴치한 철면피 사기꾼 인간들이다. 자기들이 먼저 돈을 주겠다고 구두 합의하곤 부인했다. 

 

Q. 진상범 판사의 판결을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A. 1년 동안 재판을 진행하던 김 판사가 떠나고, 2005년 3월 11일 새로 온 진상범 판사는 “이 사건은 판결을 못 하겠다. 합의하고 소를 취하하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이 거부하자 5월 11일에도 같은 말을 반복했고, 결국 “6월 1일 판결 선고”라며 재판을 종결했다. 그런데 판결 전날인 5월 31일 오후 5시, 법원 직원이 전화를 걸어 “내일 판결 선고가 없으니 나오지 말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잘 모르겠다”고만 했다. 이후 재판이 재개되자 판사의 태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판사는 “허위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고, 내가 “그렇다면 허위사실 적시로 기소한 검사의 판단이 잘못 아니냐”고 묻자 “진실이라도 죄가 된다”고 답했다. 결국 재판은 9개월이나 더 끌렸고, 입사 당시 비행시간 조작 지시 증거를 제출하자 “입 다무시오”라며 겁박한 뒤 징역 1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범죄자가 범죄를 자인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조작해 구속시켰다. 판사가 아니라 대한항공의 하수인이었다.

 

Q. 항소심 재판은 어떻게 진행됐나

A. 갑작스러운 구속 이후, 아내가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변호사들 모두 “무죄 주장은 맡을 수 없다. 죄를 자인하고 집행유예로 나가라”고 했다. 결국 네 번째 변호사의 조언대로 죄를 자인했다. 판사는 “무죄를 주장하다가 왜 자인하느냐”고 물었고, 나는 “너무 지쳐서 나가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자 “외국으로 가서 고발하려는 것이냐”고 물었고, 아니라고 하자 “대한항공 회장에게 사죄편지를 보내라”고 요구했다.

 

사죄편지를 보냈지만, 판사는 “가족이 직접 전달하고 영수증을 받아오라”고 했다. 그 편지에는 합의금 2억5천만 원에 대한 의문과, 이것이 함정이었는지에 대한 의혹도 담았다. 이 편지는 훗날 또 다른 재판에서 무죄 판단의 핵심 증거가 됐다. 2006년 4월 28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으로 석방됐다.

 

Q. 이후 국제사회에 문제를 제기하게 된 이유는

A. 재벌과 대형 로펌이 짜고 치는 구조 속에서는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2006년 5월 미국 LA와 시카고로 가서 고발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캐나다 몬트리올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를 찾아가 문제를 제기했다. 미국과 캐나다 교민 사회가 큰 도움을 줬다. 대한항공이 캐나다 입국을 막으려 했지만 오히려 망명 절차로 전환돼 보조금도 받았다. 이후 ICAO 앞에서 4년 동안 시위를 이어갔다.

 

Q.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과정은

A. 망명 심사에서 “한국은 망명 대상국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귀국을 요구받았고, 거부하자 추방 형식으로 돌아왔다. 2010년 1월 28일 귀국 즉시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됐다. 집행유예와 보호관찰 기간 중 해외에 있었단 이유로 집행유예가 취소됐고, 결국 1년 형을 모두 살고 2010년 11월 17일 출소했다. 미국에서의 시위와 언론 보도를 이유로 추가 기소돼 벌금 500만 원도 선고받았다.

 

Q. 출소 후에도 시위와 재판은 계속됐나

A. 그렇다. 다시 1인 시위와 집회를 이어가자 대한항공은 명예훼손, 업무방해, 상해 혐의로 또다시 고소했다. 이 재판에서 처음 재판 당시 모해위증을 했던 조종사의 위증이 밝혀졌고, 계기비행무자격자 사용 사실도 입증됐다. 이에 따라 과거 사건에 대한 재심이 개시됐지만, 법원은 무죄가 아닌 ‘형량 감형’에 그쳤다. 이는 명백한 꼼수 판결이었다.

 

Q. 대한항공의 추가 보상 제안은 어떤 내용이었나

A. 재심 개시 이후 조양호 회장의 지시로 다시 합의 제안이 왔다. 나는 16년을 잃었으니 16억 원을 요구했지만, 대한항공은 10억 원 이하를 제안했다. 협상은 지지부진했고, 그 과정에서 해외여행·등산 등을 제안하며 테러를 시도하려 했다는 정황도 있었다. 결국 산업은행 관리 체제로 들어가며 “법원에서 정해주면 주겠다”고 했고, 재판부는 3억 원 합의를 권고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또 패소 판결이 나왔다.

 

Q. 반복된 재심과 손해배상 소송의 결론은

A. 대법원은 일부 발언에 대해 범죄 성립이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나머지는 묵살됐다. 실제로 1년을 구속됐음에도 형사보상금은 6개월치만 지급됐다. 손해배상 소송 네 차례 모두 기각됐다. 법원은 “대한항공의 고의나 과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증거와 물증, 증인 진술, 대법원 판결문까지 있음에도 이런 판단을 내린 것은 납득할 수 없다.

 

Q.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시는 분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A. 우리나라의 사법부는 서슬이 퍼렇던 군사독재시절에도 사법파동을 일으킬 만큼 독재에 항거하는 기개가 있었다. 그런데 민주화가 된 지금의 사법부는 국민의 기본권인 자유와 권리보호는 내팽개친 채, 헌법 제103조의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원칙을 마치 ‘법관은 헌법과 법률은 필요할 때만 이용하고, 돈과 권력에 따라 심판한다’고 바꿔서 행동하고 있다.

 

헌법 제10조에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했는데, 이 역할을 사법부가 해야만 하는데도 지금의 사법부는 미약한 개인은 짓밟아 버리고는 재벌의 하수인이 되었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통해 고발하고 싶은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대한항공 #조종사 #무자격조종사 #비행시간조작 #부당해고 #명예훼손 #재심 #사법부 #기업책임 #항공안전 #인권 #장기법정투쟁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
광고